가루 빻는 장인

셔터맨 졸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초창기 아내 옆에 꼭 붙어 있으라던 병원 원장이, 근래 들어 나에게 이제 내 일 하러 안가냐고 묻는다. 이쯤하면 아내 혼자로도 약국 운영에 문제가 없지 않냐는 말이었다.

약국에 소아 환자들이 이따금씩 온다. 또 하루에 5건에서 많게는 10개 정도이다.  소아환자라 지칭하는 것은 가루약 조제가 수반되는것을 의미한다. 약사는 이따금씩 가루약 처방이 약국에 들어오면, 곤란한 표정을 노출할때가 있었다. 가루약 조제가 불편한것도 있지만, 그보다 가루약 조제로 인해 다른 처방전 환자들의 약 조제에 병목현상이 생기는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처음 약국에 도입한 제품은 파우더크러쉬라는 캐나다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아내가 자주 쓰지는 않았다. 이 제품은 주로 성인산제(성인중 알약 먹는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를 만들때 사용하곤 했다. 약자판기에서 뽑아낸 파우치 자체를 하나씩 빻아서 제공할때 사용하는데, 이때 캡슐은 빻아지지 않고 그냥 캡슐이 터져서 부서진다. 약사는 성인산제 제공시, 캡슐 껍질은 빼고 드시라고 설명하고 제공하였다. 성인들의 경우 목넘김이 어렵기에 아주 곱게 빻아서 제공할 필요까지는 없다 했다. 하지만 성인중 가루산제로 부탁하는 경우는 한달에 두세번 정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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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약은 대부분 소아환자들의 주문이었고, 이러한 소아환자 의사처방은 100% 블렌더를 이용해서 갈아서 제공한다. 약국용이라고 써있지만, 아무리 봐도, 일반 분쇄기와 별반차이가 없어보인다. 나중에 경험적으로 알게된것은 정말이지 우리네 주방에서 쓰는 분쇄기와 동일하다. 아내가 이제품을 쓰는 이유는 많은 양의 알약을 한번에 분쇄할수 있기 때문이다.  파우더 크러시를 이용할 경우 한번에 3-4일치의 소아약을 빻는데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또 전용 용기에 넣고, 두손을 모두 이용해야 하는 조작방법이, 복잡한 약국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오랜 작업시간이 걸리기에 약사는 파우더 크러쉬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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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소아환자의 엄마들 중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들이 있긴하다. 얼마전 약국에 방문한 소아과 환자의 어머니가(이하 소아맘)  약사에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가루약 조제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는 소중하기에, 여러명이 같이 쓰는 믹서기에 갈지 말라는 이유였다.  다행이도 우리는 파우더 크러쉬가 있었기에,  보는 앞에서 알약을 분쇄하는 것을 직접 목격시켜줬다고 한다. 대신 다른 처방전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곱절로 늘어났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약국의 조제환경은 잘 정리정돈되어있는 가정집의 주방보다 훨씬 더 위생적이고 깨끗하다. 또한 믹서기처럼 생긴 분쇄기 역시 훨씬더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소아맘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전용 용기에 담아서 분쇄하는것만이 위생적이라는 착각이다.

아내의 얘기를 듣고, 가루약 조제에 대해서 고민을 더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국에서 아내가 가루약 조제를 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느낀점을 정리해보았다.

  1. 가루약 조제로 인해 병목 현상이 생기기에, 블랜더를 이용할수 밖에 없다.
  2. 블랜더를 이용할때 문제점은 약의 오염보다, 분쇄후 발생하는 미세 먼지가 약사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
  3. 약을 가는 5-10초 정도는 블랜더 앞에 붙어 있어야 한다.
  4. 많게는 10개 정도의 약을 한번에 분쇄한다.

대안점을 찾기 위해 또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능성 있는 후보군을 3개로 추렸다.

우선 묵직해보이는 Safe Crush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이 회사와 지금까지도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  상업적 목적의 제품이다. 단점으로는 약을 분쇄하는데 대략 40초 정도 소요된다는 점과, 타이레놀 5개 정도를 한번에 빻을정도이다.개선된 버젼은 25초 소요된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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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세련되 보이는 Severo사의 제품이다. 이 제품은 대략 7초 정도에 알약을 분쇄해준다. 처음에 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주문을 넣었다. Safe Crush사의 담당자에게 우리 약국에서 가루약 조제하는 영상을 보내준적이 있는데,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파악하고 있는 Severo의 제품은 2-3알이 맥심이라고 설명하였다. 당연한것이 서양권에서 가루약 분쇄기는 성인산제용이며, 한번 복용할 분량만큼만 분쇄를 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하긴 설명을 들어보니, 이들의 제품이 분쇄용량이 왜이리 작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해가 되었다. Severo사에 구매의사를 취소를 하였고, 그들은 조만간 한국을 비록한 아시아 마켓에 도전하려하는데, 왜 취소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약국에서 가루약 분쇄하는 과정의 비디오클립을 보내줬다. 이것을 본 뒤로 바로 취소 처리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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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SafeCrush사의 관계자는 First Crush라는 제품이 그나마, 현재 한국의 환경에서 쓸만하겠다고 추천을 해줬다. 하지만 한국의 분쇄량을 보건데, 두대 이상을 도입하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조만간 한국시장에 만나보자는 약속을 남겼다.

 

First Crush 두대를 구매하다.  모니터로본 제품은 상당히 못생겼다. 그래도 기능만 좋으면 되겠지 생각을 했다. 막상 받아놓고 보니, 생각보다는 제법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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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컵이다. 음각으로  표시된 용기에 분량의 알약을 넣고, 양각으로 표시된 용기는 뚜껑에 해당된다. 이 뚜껑을 포개어덮고 분쇄기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된다. 문제는 이 제품이 어느정도의 성능을 발휘할것인가였다.

실제로 처방받은 아이의 5일치 분량이다.  처음 용기에 담겨진 알약 수를 보면서, 과연 이게 잘 갈릴까 의구심이 들었다. 7초가 지난후에 꺼내보았을때, 완벽히 갈려서 나오지 않은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넣고 추가 분쇄 버튼을 눌렀다. 이후 완벽하게 고운 가루로 분쇄되었다. 그렇다면 손안대고 대략 15초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 찰라에 약사는 시럽을 덜거나, 다른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아과 전문 약국은 대부분 가루약이기에, 우리약국처럼 ATC(약자판기)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반면 내과에서도 소아과 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수의 소아환자를 진찰한다. 어지간한 내과라면 ATC를 대부분 도입했다고한다.  한가지 바라는게 있다면 ATC를 이용한 조제 보조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분량의 소아산제 처방의 알약들을 한봉지에 담아서 배출해주는 기능이 있다면 봉지를 뜯어서, 분쇄기에 넣으면 조제실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가끔씩, 총량이 정수로 떨어지지 않고, 0.5 단위로 처방될때가 있다. 이러한 변수들에 대한 고민을 더하면, 멋진 가루약 보조기술로 ATC를 활용할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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